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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끓어오르는 '치욕의 대지'리뷰

by 슬탐 202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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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Mudbound,2017 '치욕의 대지'리뷰

제목:치욕의 대지(Mudbound,2017)

개봉일:2017.11.17

러닝타임:134분

 

본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상 깊게 봤다고 할 것 같은 영화 '치욕의 대지'를 소개할까 한다.

제목만 봐도 뭔가 진창일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흑인과 백인의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에 몇 번을 볼까 말까 하면서 미루다가 봤던 영화.

"그린북""노예 12년"등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를 보다 보면 감정 소모가 상당하다. 그래서 자꾸만 미루게 된다. 그만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싫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꾸만 저 Mudbound라는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궁금해서 결국 Play~

1940년대 남부전쟁이 끝나는 시기에 미국의 '미시시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무겁지만 냉정하고 묵직하게 다룬다. 영화 첫 장면에서 무덤을 파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무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알게 된다.

 

전쟁통보다 더 끔찍한 그시대 삶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제목이 그렇게 정해진 게 아닐까 싶다.

치욕의 대지라는 한국식 표현은 와닿지 않는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가 없을까? 그냥 내 생각.

 

감독이 디 리스(Dee Rees)라는 여성 흑인 감독이다. 매우 생소하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연출을 해냈다는 것이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작품에도 눈이 가게 된다. 다른 영화감독과 달리 평범한 마케팅 일을 하다가 영화로 전향하면서 꽃을 피운 케이스다.

여하튼 이 정도의 여운이 남는 영화를 만들기는 정말 쉽지 않은데 관객들의 마음을 확 잡아당기는 묘한 마력이 있다.

물론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가 그녀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백인 가정

치욕의 대지에서 백인 가정, 흑인 가정 그리고 백인우월주의 집단이 이 영화의 주된 소재이고 내용이다.

백인 가정은 흑인을 노예처럼 부려먹던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한 가정이고 흑인 가정은 그 진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 시절을 대변하는 가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냥저냥 남자 하나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로라(캐리 멀리건).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냥 그 삶에 만족하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백인 가정의 여성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흑인 가정에게 손 내밀어 줄줄 아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그렇지만 지독하게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남편과 더 지독한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남편의 아빠(조나단 뱅스)때문에 억압받으면서 남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삶을 산다. 그 시대는 우리 부모세대가 그랬듯이 남편에게 찍소리 할 수 없는 썩은 정신의 시대였으니...

치욕의 대지에서 감정의 분수령을 담당하는 조나단 뱅스의 연기력은 정말 사람을 분노케 한다.

그가 하는 대사 한마디

 

"깜둥이는 뒷문으로 다녀야지"

"깜둥이가 옆자리에 타?"

 

그가 보여주는 눈빛과 제스처 하나에도 몸서리가 처질만큼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다.

지독한 차별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차별해야 할 대상을 동등하게 대한 백인도 눈치 봐야 하는 세상이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큰 큰아들은 똑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자기 도움 필요할 땐 이용해 먹는 걸 보면..

그런 그와 결혼한 로라는 영화 중간중간 그 현실을 불편해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영화 전반부에 무덤을 같이 파고 있는 동생은 남부 전쟁에 참가한다.

전쟁터에서는 위아래 없이 전부 동지가 아닌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게 해 준 사람이 흑인이었다.

동생 역할을 연기한 배우는 '언브로큰'으로 세상에 알려진 '가렛 헤드룬드'다. 백인 가정의 둘째 아들인 동생은 남부 전쟁을 참전하면서 흑인과 함께 싸우고 동지애를 키우면서 차별 따위에 대해서는 관심 없는 깨어있는 사람이다.

 

흑인 가정

백인의 농장을 소작하면서 이 진흙탕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악물고 살아가는 흑인 가정이다.

흑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대로 보인다. 그들은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선조도 이런 차별의 지리멸렬한 삶을 겪어왔기 때문에 자신의 대에서 끊고 싶어 한다. 힘들게 모아서 반드시 자신의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목표.

 

하지만 백인 가정은 그들을 여전히 가감 없이 짓밟고 노예 부리듯 부린다. 흑인 가정의 큰아들 역시 남부 전쟁에 참가한다. 남부 전쟁에 참가하면서 차별 없는 세상을 겪으며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뜨지만 전쟁이란 건 누군가를 죽여야 하기에 그마만큼의 심적 고통은 내재되어 있다.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있는 것.

전쟁에 승리하면서 금의환향하지만 자신이 돌아온 곳은 전쟁터보다 더 심한 진흙탕. 그야말로 치욕의 대지다.

아버지를 도와서 그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린북에서 흑인이 다닐 수 있는 곳만 정해진 가이드북 같은 게 있고 룰이 있다는 걸 보고 기겁했었는데 치욕의 대지에서도 그랬다.

버스에는 흑인이 앉을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었으며 가게를 가도 흑인은 뒷문으로 다녀야 한다.

 

배운 게 있고 본 게 있고 이미 다른 세상을 겪어본 자가 이 지독한 절망의 삶에 만족할 리 없다.

당연히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고 백인 가정의 둘째 아들 역시 전쟁 후 돌아온 집이 불편하고 힘들며 무기력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도 겪고 있는데 아버지는 지독한 우월주의에 빠져서 같은 인간을 무참히 짓밟는 것에 태연한 것이 너무 싫다.

그렇게 전쟁영웅 둘은 절친이 된다.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털어놓고 서로 위안을 삼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친구와 함께 하면서 견뎌낸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매우 섬세한 감정표현에 놀라는 순간들이 꽤 많다.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다른 영화와 다르게 감정 연출에 있어서 탁월하다. 우월한 인간, 열등의 인간, 무기력한 인간 제각각 그런 삶의 현장에서 겪고 있을 법한 감정연기는 불편하면서도 실감 나게 전달된다.

흑인 가정의 엄마 역할을 맡은 사람이 메리 제이 블라이즈라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치욕의 대지 OST를 부른 가수다.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백인 전쟁영웅과 흑인 전쟁영웅이 같이 옆자리에 앉았다는 것, 흑인이 백인에게 당당하게 맞선 것이 백인우월주의 집단의 눈에는 매우 고깝게 보이는 모양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격분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말하면 너무 큰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겠지만 자신이 강자일 때나 우위에 있을 때(강자도 아니고 우위도 아닌 것들이) 매우 잔인해지고 죄의식 따위는 전혀 없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한 명을 죽였지만 두 눈 똑바로 보고 죽였다."

전쟁영웅으로 돌아온 백인 아들에게 한 아버지의 대사다. 돌아온 것에 대해 회포를 풀면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버지는 묻는다 "몇 명 죽였냐?"

전쟁터에서 자기 옆의 전우가 죽는 걸 본 사람에게 한 말이다. 얼마나 남자다운지 증명하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렇게 남자다웠다고 말한다. 이 대사에서 백인우월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그리고 시대가 제공해준 권력? 은 어떻게 상대를 무너뜨리고 있는지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은 남자들에게 억압받는 삶, 흑인은 백인들에게 짓밟히는 삶, 삶도 진흙탕이고 땅도 진흙탕인 이곳은 전쟁터보다 더 진창이다.

 

희망은 '사랑'이다.

"할 수 있다면 독일로 가서 아들과 함께해"

전쟁터에서 사랑의 결실을 맺은 흑인 가정 큰아들에게 건넨 백인 가정 둘째 아들의 대사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는 이유로 차별주의 집단 백인들에 의해 끔찍한 일을 당한다.

영화 시작에 백인 가정이 관을 들고 땅에 묻는 이유가 결말에 나온다.

흑인 가정 큰아들은 독일로 가서 자신의 아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쏟으면서 치욕의 대지가 끝나는데 억압, 탄압, 차별, 진흙탕 같은 삶에서 그들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사랑'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치욕의 대지(Mudbound)는 꼭 보시길 추천한다. 볼까 말까 망설였던 분이시라면 그린북이나 노예 12년과는 또 다른 연출에 감동할 것이다. 세심하고 잔잔하면서 담백한 듯하면서도 감정의 소용돌이가 미친 듯이 치게 되면서 밤새 잠이 안 올 만큼 여운이 긴 영화다.

사실 우리는 현재에도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별의 세상에 살고 있다. 장애인 차별, 계급 차별, 노동차별, 직업차별, 결혼에 대해서도, 경제력으로... 등등 다양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는 어떤 차별의 세상에 살고 있는지...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치욕의 대지인지 한 번쯤은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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